문씨유래   ≫   문씨 파분류


남평문씨 파분류

남평문씨 파(派) 분류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면서 여러개의 가지로 나뉘어 번성하듯이, 하나의 성씨도 나무처럼 그 근원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가 있는데 이를 파(派)라고 합니다.
남평문씨는 10개의 큰 파로 나누어져 있고, 각 파는 다시 작은 파(지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파 이름은 호나 벼슬 및 세거지 등으로 표시하고 선조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문씨의 훌륭한 점 중 하나는 여러 그루의 나무가 모여 이룩한 숲이 아니고, 본관이 남평(南平)이라는 뿌리를 갖인 단 한 그루의 나무가 번성한 것임으로, 모든 문씨는 친척이며 일가라는 점입니다.
남평문씨를 만났을 때 파(派)를 따져보면 멀고 가까움을 알 수 있으며, 세손(世孫)을 따지면 위, 아래를 알 수 있습니다.

남평문씨 10대 종파의 파 분류는 아래와 같습니다(파란색 이름이 각파의 파조임).



* 10대 종파 분류 이외에, 종파를 크게 분류할 경우 10세 휘 익점 선조 후손들 5개파를 충선공파(전에는 강성군파라 했음), 4세 휘 유필 선조 후손들 2개파를 순평부원군파라고 합니다.

* 본인이 속한 파와 세를 알아보려면 남평문씨 홈페이지 "인터넷대동보"의 "족보검색"에서 "본인이름"과 "아버지 이름" 입력하여 검색하면 알 수 있습니다.



1. 충혜공파 파조- 충혜공 익겸(忠惠公 益謙)
10세 충혜공 휘 익겸(益謙)은 충혜공파 파조이시다. 아버지는 숙선(叔宣)이며 충선공 익점의 형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선 합문지후를 거쳐 전중내급이 되셨고 부인은 청주 정씨이다. 후손 중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크게 활약하신 모계공(茅谿公) 위(緯)가 있으며 후손들이 경남 거창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17세 모계공 위는 용원서원에서 제향)

2. 헌납공파 파조- 헌납공 중용(獻納公 中庸)
11세 헌납공 휘 중용(中庸)은 충선공 익점의 장남으로 헌납공파 파조이시다. 字는 도보(道甫)로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출생했으며, 37세인 우왕 18년 문과급제 사간원 헌납을 지내고 조선 때 불사이군을 고집하시며 사임하셨다. 아들로 승로(承魯), 승손(承孫) 두 아들을 두셨으며, 묘를 실전하여 2004년 도천서원 입구에 설단하였고 매년 4월 5일에 단제를 올리고 있다.

3. 순질공파 파조 - 순질공 중성(純質公 中誠)
11세 순질공 휘 중성(中誠)은 충선공 익점의 둘째 아들로 순질공파 파조이시다.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출생하셨으며 우왕11년 형 중용과 함께 문과 국자 진사에 급제 한림원 학사가 되셨다. 이성계의 전횡에 봉직 중이던 합문지후 간의대부를 사임하고 태종5년(1405) 동생인 중실, 중계와 함께 수차례 벼슬을 주며 불렀으나 불사이군을 고집하고 사양하였다. 별세 후 정헌대부 병조판서 예문관대제학에 추증되셨다. 아들로는 화(和), 임(稔), 빈(彬) 세 아들을 두었다. 묘는 실전하여 도천서원 입구에 설단하였으며 매년 양력 4월 5일 단제를 모시고, 음력 3월 20일 삼락재(전남 보성군 회천면 회령리)에서 제향하고 있다.

4 의안공파 파조 - 의안공 중실(毅安公 中實)
11세 의안공 휘 중실(中實)은 충선공 익점의 셋째 아들로 의안공파 파조이시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부친의 불사이군 유언을 지키기 위해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사임하셨다. 사후에 참지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 아들로는 래(萊), 영(英), 종(종), 평(苹) 자(蔗) 5남을 두었다. 묘를 실전하여 2004년 도천서원 입구에 설단하였으며 매년 4월5일 단제를 올리고 있다.

5. 시중공파 파조 - 시중공 중진(侍中公 中晉)
11세 시중공 휘 중진(中晉)은 충선공 익점의 넷째 아들이며 시중공파 파조이시다. 고려 때 성균관 진사 시랑밀직부서 참지문하시중을 역임하셨다. 아들로는 헌(獻), 유(猷), 영(榮) 3남을 두었다 묘를 실전하여 1976년 전북 옥구군 회현면 고사동에 설단하고 단소 옆에 영모재란 재택을 세웠으며 음력 3월15일에 제향하고 있다.

6. 성숙공파 파조- 성숙공 중계(成淑公 中啓)
11세 성숙공 휘 중계(中啓)는 충선공 익점의 다섯째 아들로 호는 창주(滄洲)이며 성숙공파 파조이시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해 예조판서·도첨의(都僉議)에 이르렀고 예부상서로 봉직하였다. 조선 개국 후 사임하였으며 은거 중이던 태조4년(1395) 조정에서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86세에 돌아가시니 조정에서는 정헌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추증하고 시호를 성숙이라 하였다. 아들로는 길(吉), 보(甫), 필(弼) 세 아들을 두었다 묘를 실전하여 도천서원 앞에 설단하였으며 매년 4월5일 단제를 올리고 있다.

7. 감천군파 파조- 감천군 구(甘泉君 龜)
9世 감천군 휘 구(龜)는 감천군파 파조이며 시호는 경양(敬襄)이다. 아버지는 재도(載道)이며 안동부 감천현에서 태어 나셨다. 조선 초기에 좌정승(左政丞)을 역임하셨고 감천군에 봉해졌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현내리 큰 제사골에 묘소가 있으며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8. 남제공파 파조- 사간공 착((司簡公 言卓)
5世 사간공 휘 착의 호는 남제(南濟)이며 남제공파 파조이시다. 고려 의종 14년(1160)에 출생, 문장이 저명하여 명종 14년(1184년)에 등과하였다. 대제학으로 재임할 때 왕이 탐라에 문교가 없음을 불쌍히 여겨 1194년(명종 24)에 공을 탐라로 특파 선화케 하니 이 고장의 문물은 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에 문씨 제주 입도(入島) 시조가 되었다. 서거 후 상주국평장사(上柱國平章事)를 추증하고 가나군(加那君)을 봉하여 시호를 사간(司簡)이라 했다. 고씨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양부(陽夫)를 두었다. 묘소는 실전하여 1981년에 예손들이 정성을 모아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하기리에 추모탑을 건립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4월5일 청명가절에 추모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9.충익공파 파조- 충익공 달한(忠翊公 達漢)
9세 충익공 휘 달한(達漢)은 충익공파 파조이시다. 고려 충숙왕 6년(1337) 남평에서 출생하여 이교의 따님 고성 이씨와 혼인하셨다. 우왕 때 대호군(大護軍)을 제수 받고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영전하여 추충익재보조공신(推忠翊戴輔祚功臣)의 호를 받음. 경기, 충청, 경상도 도체찰사로 왕명으로 군대를 순시 중 왜적 1천여 명을 소탕하였다. 원나라로 우왕을 배행하던 중 말을 탄 채 물을 건너려는 왕을 위험하다고 만류했다가 왕의 길을 막았다하여 삭탈관직까지 당하고 찬성사가 된 후 헌사(憲司)의 탄핵으로 합포, 철원으로 잠시 귀양을 다녀오시고 삼사우사를 임명 받은 후 이임의 탄핵을 받아 다시 유배를 당하였다. 공양왕 4년(1392)에 순평군(順平君)으로 봉해진 후 56세에 별세하셨다. 아들은 계종(繼宗)과 효종(孝宗)이다. 저산서원(전북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에서 매년 음력 2월16일 배향하고 있다.

10. 판도판서공파 파조- 간혜공 근(簡惠公 瑾)
8세 간혜공 휘 근(瑾)은 판도판서공파 파조이시다. 아버지는 녹천(祿千)이며 봉상대부 판도판서를 하셨다. 고려말기의 혼란한 정국에 실망하신 간혜공 諱 근(瑾)께서 아드님 세봉(世鳳), 세린(世麟)과 함께 대야촌(합천의 옛이름)에 낙향하시어 합천의 남평문씨 입향조가 되셨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선목리에 단(壇)을 모시고 고현재(羔峴齋-경남 합천군 용주면 노리) 에서 매년 음력 10월 9일 제향하고 있다.